이어폰/헤드폰에 흔하게 쓰이는 공간감이라는 단어는 사실 *정위감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합합니다. 정위감을 넘어서는 공간감을 느끼도록 시도한 게 바이노럴, 입체 음향 등입니다. 지금부터 강성훈 음향 공학 박사가 출판한 음향 관련 도서 내용을 인용하여 공간감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간략하게 언급해보겠습니다. 다소 따분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입체 음향을 구현하는 방법과 매우 밀접하기 때문에 최대한 간략하게 요약하겠습니다.
* 정위감: 악기나 보컬 이미지가 정확하게 위치하고 깨끗하게 그려지는 사운드 스테이지 특성
첫 번째로 소리 크기 차이로 인한 거리(원근)감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로, 소리가 클수록 가깝게 느껴지고 작을수록 멀게 느껴지는 걸 말합니다. 가까운 경우 저주파~고주파까지 명확하게 들리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고주파가 감쇠되어 버리는 특징이 있는데, 이것이 거리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두 번째로 두 귀가 떨어져 있어서 느낄 수 있는 방향(정위)감입니다. 특정 방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귀 사이에 있는 머리가 장애물 역할을 하게 되어 시간차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단서가 되어 방향감을 자각하는 겁니다. 다만, 주파수 파형이 장애물 역할을 하는 머리보다 큰 경우 단서를 알아채기 힘들게 되어, 마찬가지로 저음보다는 고음이 공간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간접음으로 인해 느껴지는 확산감입니다. 굽은 길이나 온갖 구조물 등에 반사되어 전달되는 간접음은 소리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합니다. 그 대신, 공간에 대한 상상을 하도록 만들어서 공간감 자각에 도움을 줍니다.
귀만 공간감 형성에 기여하는 건 아닙니다. 일정한 크기 소리라도 시각적으로 다른 물체보다 가까워 보인다면 더 크게 들리는 듯한 심리적 효과가 있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실험을 진행한 연구 사례가 있는데, 한 명도 빼놓지 않고 가까운 물체에서 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입체 음향이 음원보다 게임이나 영화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HyperX Cloud Orbit S는 드라이버가 각각 하나씩 탑재되어 있기 때문에 가상으로 7.1채널 기능을 구현했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소프트웨어를 통해 7.1채널을 활성화하고, 3D를 On / Auto / Manual 등으로 설정해야 기능이 작동합니다. 일반적으로는 3D On으로 두는 게 좋고, 때에 따라 Manual 모드로 설정하고 모니터를 중앙으로 캘리브레이션 해도 좋습니다.
테스트 - 음원
HyperX Cloud Orbit S 가상 7.1채널 기능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프라운호퍼 홈페이지에 있는 테스트를 활용해봤습니다. 프라운호퍼는 집적회로 연구소로 오디오 및 미디어 기술, 영상 시스템, 에너지 관리, IC 설계 및 설계 자동화, 정보통신시스템, 측위, 의료기술, 센서 시스템, 안전 보안 기술, 공급망 관리, 비파괴 검사 등 엄청나게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개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홈페이지에 있는 'HTML5 AAC Audio Playback Tests - Multichannel' 항목에서 가장 밑에 있는 7.1채널 식별 음성 파일로 방향감을 식별해봤는데요. 제가 지금까지 퀘이사존에서 테스트해왔던 헤드셋 중에 가장 정확한 방향감을 구현했습니다. 취향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존재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리얼 7.1채널 헤드셋보다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Waves Nx 음장 효과는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접해보는 데 참 괜찮네요.
보통 착용감은 외형 단락 바로 뒤에 이어서 알아보는데, 워낙 이런저런 기술이 많은 헤드셋이라 순서를 뒤로 미뤘습니다. 서두에서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에 대해 알아볼 때 무게가 무겁다는 게 단점이라고 언급했었죠. 하지만 Orbit S는 359g으로 그리 무겁지 않은 편입니다. 물론,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탑재한 헤드폰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무겁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평판형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오히려 가볍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게이밍 헤드셋은 300g이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Orbit S 무게는 단점이라고 표현하고 싶진 않습니다. 물론, 마이크까지 장착한다면 약 370g 정도이기 때문에 사용 시간이 길어지면 목에 뻐근함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갖는 게 좋습니다.
길이 조절 슬라이드가 꽤 큰 폭으로 늘어나며, 관절이 네 방향으로 움직여서 두상 모양이나 크기에 따른 제약은 상대적으로 덜 할 겁니다. 헤드 밴드 면적이 좁은 편이라서 정수리에 느껴지는 압박도 덜 한편입니다. 다만, 장력이 살짝 강한 편이라서 착용 시간이 길어지면 답답함이 느껴지거나 관자놀이 부분 혹은 턱 부분에 통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중간중간 쉬어주기만 해도 상당히 완화할 수 있습니다.
이어 패드와 헤드 밴드는 인조가죽으로 만들어졌는데 상당히 부드럽고 마감이 좋아서 피부에 자극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어 패드는 귀를 완전히 덮을 만한 크기이며 통풍이 잘 안 되는 재질이라서 답답함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대신에 차음 성능은 나쁘지 않습니다. 헤드 밴드 역시 두께도 충분하고 푹신해서 정수리에서 압박감이 덜 느껴지는 편입니다. 위 내용과 종합했을 때 착용감은 좋은 편입니다만, 무게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오랜 시간 착용해야 하는 상황에선 불리할 수 있습니다.
측정치 및 소리 성향
본 테스트에 사용한 제품 측정값은 제품 전체 특성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측정 도구, 샘플, 주변 환경 등 여러 가지 요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니 참고 용도로만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헤드폰 측정은 음향기기가 모의 귀를 완벽하게 밀폐하지 못하거나 뜨는 상황이 발생하면 밴드를 통해 인위적으로 밀착한 후 측정을 진행합니다. 여러 차례 측정하여 가장 평균적인 값을 사용하며, 직접 기기를 청감하여 그래프와 비교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헤드폰이 귀를 완벽하게 밀폐하지 못할 경우 위 그래프와 다른 성향 소리를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소리에는 정답이 없지만, 모든 정보를 선명하게 듣고 싶은 분들은 전체 대역이 평평한(flat) 특성을 보일수록 좋습니다. 헤드폰은 리스닝 룸에서 결과를 도출한 올리브-웰티 타깃을 따르는데, 평평한 특성을 보이더라도 저음역이 다소 많다고 느끼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그래프는 1/3 스무딩을 적용한 상태입니다. 헤드셋 특성을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세밀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건 다소 무리가 있는 방식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글로 풀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HyperX Cloud Orbit S는 Audeze Mobius와 아주 유사한 토널 밸런스를 보여줍니다. 저음역부터 중음역까지 아주 평탄한 그래프가 그려지는데요. 평판형 특성까지 가미되어 빠르고 단단한 저음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탑재한 헤드폰/헤드셋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소리입니다. 결점이 딱히 보이지 않는 대역을 따라가다 보면 5kHz 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5kHz 대역이 강조되면 소리에 자연스러움이 사라지는데, 반대로 Orbit S처럼 딥이 존재하면 소리가 날카롭고 선명하다는 느낌이 줄어듭니다. 소리를 완벽하게 분해해서 수많은 음향 정보를 귀로 쏟아버리는 듯한 느낌은 없습니다만, 인위적이지 않고 편안한 소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아주 만족할 만한 제품입니다. 게이밍 헤드셋 시장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성능입니다. 연결 방식과 상관없이 화이트 노이즈가 깔리는 편입니다만, 소리가 재생되기 시작하면 들리지 않기 때문에 음악 감상, 영화 감상, 게이밍까지 올인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헤드셋입니다.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는 탈부착이 가능하며, 구부리기도 쉽고 형태도 잘 유지돼서 수월하게 입 앞에 배치할 수 있습니다. 왼쪽 하우징에 있는 스위치를 통해 음소거를 할 수도 있죠. 게이밍 헤드셋은 보이스 채팅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주변 소음과 목소리를 잘 분리해야 합니다. Orbit S 살짝 밝지만, 왜곡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소리가 깔끔하게 녹음되는 편입니다. 또한, 단방향성 마이크가 탑재되어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작게 녹음됩니다. 목소리와 주변 소음은 쉽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라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성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이번 칼럼에서 중간중간 언급한 Audeze Mobius는 평판형임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출시되어 사용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게이밍에 도움 되는 Waves Nx 3D와 헤드 트래킹 기술은 그 어느 음장 기술보다 와닿았는데요. 게이밍 기어를 전문으로 만들어내는 브랜드에서 출시한 헤드셋에서 경험하지 못한 기술이라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 동료 QM들에게 경험을 강요(?)했습니다. 다들 저처럼 신기해하더군요. 이렇게 잘 만들어진 제품을 기반으로 출시된 HyperX Cloud Orbit S에 대한 평가는 자연스럽게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HyperX는 블루투스 기능을 제거하고 70달러를 낮추는 판단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게이밍 기어 브랜드 정체성에 맞는 좋은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음향 전문 제조업체인 Audeze보다 더 얌전한 외형으로 변경한 점 또한 제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했습니다.
게이밍 기어로 한정 짓기가 민망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이 제품이 가진 문제는 가격입니다. Audeze Mobius 가격이 399달러, Orbit S는 329달러로 출시되었습니다. 꽤 부담스러운 가격이죠. 그나마 다행인 건 한국 정식 출시가가 399,000원으로 비슷하거나 환율에 따라 저렴한 편입니다. 오히려 Audeze 평판형 기술과 Waves NX 음장 기술이 탑재된 걸 고려한다면 이 가격은 누군가에게는 가성비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현재 게이밍 기어 시장에서 이 제품 경쟁 상대는 Mobius 밖에 없으며, 블루투스를 제거하면서 가격이 저렴해진 Orbit S가 경쟁력이 조금 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이밍 헤드셋을 딱 하나만 구매하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이 제품을 선택할 겁니다.
HyperX는 다른 전문 분야에 있는 업체와 협업을 거리낌 없이 진행하는데요. 어설프게 할 거면 차라리 전문가 도움을 받겠다는 자세는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를 내놓습니다. 최근 내놓은 신제품 하나하나가 참 주옥같은 제품들이라서 이 브랜드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이 신제품을 내놓는다고 한다면 저는 또 기대를 하며 기다리게 될 겁니다.
지금까지 퀘이사존 깜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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