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케이스 시장은 항상 꾸준했습니다. 트렌드에 걸맞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과열된 시장이 차갑게 식게 되면 늘 보던 디자인의 네모반듯한 케이스들만 존재했죠. 쉽게 말하자면 다소 심심했습니다.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스펙을 갖춘 제품이 등장하는 게이밍 모니터 시장이라던가, 새로운 제조 공정이 적용되어 더 나은 성능이 확인되는 CPU나 GPU 시장과 달리 고요하고 평온했죠.
그나마 케이스 시장에 경쟁이란 키워드가 어울릴 수 있던 것은 RGB뿐이었습니다. 형형색색의 컬러감이 주는 신선함. 알록달록한 LED가 장착된 케이스는 컴퓨터의 부품을 보호하는 역할에서 현재는 게이밍 룸과 데스크 셋업의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중요한 포지션이 되어버렸죠. 소비자들은 투박하고 밋밋한 케이스가 아니라 조금 더 화려하고 더 빛나는 케이스를 원했고 회사들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LED 쿨링팬과 LED 스트립으로 중무장된 제품들을 선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RGB 광풍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픽카드와 일체형 수랭 쿨러. 그리고 메모리나 마더보드와 같은 일반적인 부품 외에도 SSD를 비롯하여 심지어는 사운드카드와 스피커 같은 주변기기 시장까지 잠식했죠.
하드웨어 시장에서 RGB는 마치 대형 산불과도 같았습니다. 케이스의 중요한 가치인 공간의 개선이나 재질의 변경, 내부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차음성과 수용 가능한 저장 장치의 장착 개수, 빌드에 활용할 수 있는 면적에 대한 고민은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으며 케이스 회사들은 레이아웃에 대한 고민 보다 시각적인 요소에 대한 변화에 집중하여 제품을 설계했고 RGB라는 트렌드를 뒤쫓기에 급급했습니다.
Adverse Effect 정도를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인 과유불급은 중용의 중요함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마침내 하드웨어 시장에서도 이러한 역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컴퓨터에서 RGB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LED의 변경을 통한 단순한 색깔 놀이에 질려버린 유저들, 케이스의 본질에 더 무거운 무게 추를 두려는 유저들의 등장이 바로 그 역효과의 일부인데요.
인간의 인식능력 중 하나인 감성에 가까운 소비자가 아니라 감성과 대립적인 관계에 위치한 지성에 가까운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높이기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이에 부합하는 철학을 갖춘 회사가 대답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네. 바로 Fractal Design이죠.
Fractal Design 북유럽 감성으로 유명한 케이스 회사인 Fractal Design은 최근 자신들의 상징이던 로고를 바꾸면서 변화의 바람을 예고했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그 바람은 좋은 곳으로 불고 있죠. Fractal은 간판 모델이나 다름없던 Define 시리즈의 새로운 넘버링에 본인들의 철학을 그대로 투영하면서 동시에 RGB 제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한때 Fractal은 감성 지향적인 소비자들의 원성에 마지못해 자신들의 철학과 반대 노선에 위치하던 RGB를 수용하기도 했었지만(Define S2 Vision RGB가 바로 그 제품) 이제야 드디어 본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것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귀환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싶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RGB 혐오자이기도 하거든요.
돌아왔구나 프태식이 Fractal은 비밀에 붙여진 황금비율을 유지한 채로 레이아웃 풀체인지를 시도했고, 기존 Define 시리즈의 구매자들이 조립 시에 느꼈던 불편함과 건의사항들을 대부분 수용한 새로운 설계를 제품에 적용했습니다. 다양한 입맛의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일반적인 크기는 넘버링이 바뀐 "7"로 출시하고 더 많은 공간을 활용하길 원하는 소비자들을 위해선 "7 XL"이라는 이름의 추가적인 선택지까지 배치하면서 자신들의 철학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을 다했죠.
투박하고 깔끔하다. 그리고 밋밋하고 심심하다. 이 부분은 각자의 시각에서 동일한 Fractal Design의 제품을 보며 나올 수 있는 결론인데요. 하지만 이번 Define 7XL은 케이스의 본질인 레이아웃의 개선에 집중했기 때문에 감성이 아닌 지성에 가까운 소비자들에겐 분명 또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 마음을 훔친 간장게장 같은 케이스. Define 7 XL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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