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R)의 역사
넓은 의미에서 가상현실의 개념은 우리의 생각보다 아주 오래전부터 등장했고, 또 발전해왔습니다. 이하 내용은 VRS(www.vrs.org.uk) 사이트의 내용을 토대로 가상현실의 역사를 정리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 19세기의 파노라마 그림
▲ Battle of Borodino, 1812
앞서 말한 것처럼 가상현실의 개념을 넓게 해석한다면, 실제와 가까운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진 360도 화각의 그림(파노라마 그림)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19세기에 등장한 이 그림은 보는 사람 입장에서 역사의 순간을 최대한 잘 느낄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 1838년 - 입체 사진
1838년 Charles Wheatstone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두뇌는 좌, 우 양쪽 눈에서 서로 다른 2차원 이미지를 동시에 보았을 때 3차원의 이미지로 인식하게 됩니다. 따라서 입체사진의 원리도 동일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는데요. 좌, 우 눈에서 다른 각도의 사진을 겹쳐서 보게 되면, 3차원 이미지처럼 깊이와 몰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활용하여 누구나 카메라만 있으면 동일한 피사체를 놓고, 각각 좌, 우 눈에 해당하는 각도만큼 틀어서 사진을 찍어 입체 사진을 만들 수 있습니다.(그리고 매직아이처럼 상을 겹쳐서 보면 3차원 이미지로 느껴집니다.) 이러한 입체 사진의 원리는 최근 구글의 카드보드 및 스마트폰용 저가형 VR HMD(Head Mounted Display)에 사용됩니다.
▶ 1838: 입체경 | The stereoscpe (Charles Wheatstone)
▶ 1849: 렌티큘렁 입체경 | The lenticular stereoscope (David Brewster)
▶ 1939: 뷰마스터 입체경 | The View-Master (William Gruber)
이러한 입체 사진의 원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인간의 감각을 더욱 자극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요. 특히 20세기에 들어서는 전자/컴퓨터 기술의 출현과 함께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 1929년 - 최초의 비행 시뮬레이터: 링크 트레이너
1929년 에드워드 링크(Edward Link)는 링크 트레이너(Link Trainer)라는 최초의 비행 시뮬레이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링크 트레이너는 모터에 연결된 방향타와 조향 장치를 통해 피치와 롤 각도를 조할 수 있었으며, 난류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미군은 훈련을 위해 링크 트레이너를 구입했는데요. 당시 3,500 달러라는 가격을 자랑했습니다.(2015년 기준으로 약 50,000 달러 가치)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10,000개 이상의 링크 트레이너는 5십만 명 이상의 파일럿을 훈련시키는데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링크 트레이너는 모션 기술을 응용하여 실제와 같은 상황을 연출한다는 측면에서 오늘날 4D 극장의 시발점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좌: 에드워드 링크(Edward Link), 우: 링크 트레이너(The Link Trainer)
■ 1930년대 - SF 소설에 VR 개념이 등장하다
1930년대 SF 소설 작가인 Stanley G. Weinbaum은 Pygmalion's Spectacles 작품에서 현대의 VR과 유사한 개념의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요. 소설에서 등장하는 안경을 착용하면 홀로그램 영상을 보고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냄새와 맛 그리고 촉각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현시점에서 보면 VR의 진정한 비전을 제시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인간의 상상력은 결국 현실이 되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sffaudio.com
■ 1950년대 - 모튼 하이릭의 센소라마(Sensorama)
1950년대 중반, 시네마토그래퍼 모튼 하이릭은 시각과 청각뿐만 아니라 그외의 감각을 자극하는 아케이드 스타일의 극장 '센소라마(Sensorama)'를 개발했습니다. 구성을 살펴보면 스테레오 스피커, 입체 디스플레이, 팬(Fan)을 이용한 바람 생성기, 냄새 생성기, 진동 의자가 있으며 이를 통해 영화에 대한 몰입감을 극대화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현대의 4D 극장에 가장 가까운 형태라 할 수 있는데요. 실제로 센소라마의 영화 제목은 특성상 굉장히 원초적이었습니다. 살펴보면... '오토바이', '발리 댄서', '모래 언덕 버기', '헬리콥터', '사비나와 데이트', '나는 콜라병'
▲ 센소라마 이미지(출처: mortonheilig.com)
■ 1968년 - 이반 서덜랜드의 다모클레스 검
1968년 이반 서덜랜드는 카메라가 아닌 최초의 컴퓨터 기반 VR HMD, 다모클레스의 검을 만들었습니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천장에 설치된 장비는 너무나 무겁고 거추장스러워 보이지만, 당시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대단한 장치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 렌더링(Rendering)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재의 HTC Vive와 같은 VR 기기의 시초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컴퓨터 그래픽의 경우 지금과 같은 화려한 3D 그래픽이 아니라 원시적인 와이어 프레임(Wire Frame)으로 구현되었습니다.
▲ 이반 서덜랜드(Ivan Sutherland)와 다모클레스의 검(Sword of Damocles)
어쨌든, 이반 서덜랜드는 컴퓨터 기반 VR HMD의 기반 이론을 확실히 정립하였고 또 만들어냈다는 부분에서는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요. 어쩌면 FPS 게임 역사에서 울펜슈타인/둠의 업적과 비교할 수도 있겠습니다.
■ 1987년 - Virtual Reality(VR)이라는 이름의 탄생
가상현실 관련 기술이 꾸준히 발전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이 모든 분야의 기술을 아우르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VR) 즉, VR이라는 단어 자체가 개념적으로 통용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다 1987년 시각 프로그래밍 연구소(VPL)의 설립자 Jaron Lanier가 'Virtual Reality' 단어를 사용하면서부터 대중들은 VR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VPL은 데이터글러브(Dataglove)와 Eyephone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MD)를 개발하였으며, 또 상업적인 판매를 시작한 최초의 회사입니다. VR HMD인 Eyephone의 경우 모델에 따라 $ 9,400/$ 49,000 가격으로 책정되었는데요. 당연히 서민들은 꿈도 못 꾸는 가격이었기 때문에 대중화에는 실패하였습니다.
■ 1993년 - 세가, VR 글라스를 발표하다
세가(SEGA)는 CES 1993에서 세가의 콘솔 게임기 '제네시스(Genesis)'용 VR 헤드셋을 발표하였습니다. 머리를 감싸는 구조의 VR 글래스는 스테레오 사운드 및 LCD가 탑재되었으며, 헤드 트래킹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당시 $ 200 USD의 가격으로 출시 예정이었습니다만, VR 글래스용으로 4개의 게임 역시 개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소비자 판매에는 실패하였습니다. 즉 프로토타입은 개발이 되었으나, 여러 기술적 여건의 어려움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만져볼 수 없었던 것이죠. 벌써 VR 글래스가 세상에 공개된지도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이지만, 크게 촌스럽지 않은 디자인이 인상적입니다.
■ 1995년 - 닌텐도 버추얼 보이
세가 VR 글라스가 발표되고 2년 후, 닌텐도에서는 버추얼 보이(Virtual Boy, VR-32)를 출시했습니다. 최초의 VR 콘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당시 기준에서는 제법 그럴듯한 3D 그래픽을 보여주었고, 가격도 $ 180 USD 이라는 비교적 현실적인(?) 수준이었지만, 또 시장에서 실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실패의 원인으로는 매우 제한된 색상 표현(오로지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인해 눈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용자가 굉장히 많았고 또 무겁고 불편하였습니다. 따라서 VR의 가능성과 기술적 신박함은 현대의 기술이 받쳐주지 못하여 빛을 보지 못했다는 의견들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VR 기기가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인프라가 갖춰져야 하는데, 아직 시대적으로 이르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죠.
■ 21세기 - 현세대의 VR
▲ 21세기의 VR 기기(좌: 오큘러스 CV1, 우: 구글 카드보드, 아래: HTC Vive)
21세기를 맞아 2016년 지금이 되기까지, 가상현실의 발전은 가장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 아울러 작고 강력한 스마트폰 기술은 붐을 일으켰고 가격 또한 지속적으로 떨어졌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인해 고밀도 디스플레이의 대중화가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간단한 장치만으로도 VR을 경험할 수 있는 구글 카드보드(Cardboard)가 나타났습니다. 또한, 시중에는 구글 카드보드의 원리에 따른 수많은 종류의 저가형 스마트폰 VR 기기가 판매되고 있고요. 비슷한 원리이지만 삼성의 경우 오큘러스(Oculus)와 기술적 협업으로 기어 VR(Gear VR)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VR 역사에 있어 컴퓨터 그래픽 렌더링 기반의 시초였던, 데모클라스 검, 아이폰(Eyephone), 세가 VR 글래스, 닌텐도 버추얼 보이 이후 사실상 시장은 정체되어 있었는데요. 오큘러스의 등장과 함께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던 기술적 진보가 꽃을 피우려 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VR 경험을 위해 고사양의 컴퓨터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HTC Vive와 Oculus CV1이 주도적인 역할을 갖고 선도하는 중입니다. 또한, 앞으로는 다양한 모션 감지 센서와 디스플레이 기술의 발전, 컴퓨터 그래픽 능력의 발전에 지속적으로 힘입어 더욱 뛰어난 퀄리티의 VR HMD가 출시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VR 시대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VR의 한계로 지목되고 있는 점도 많은데요. 이를테면 VR HMD를 착용하게 되면, 그야말로 VR 외의 진짜 현실에 대한 시야는 차단되기 때문에 현실적 제한과 불편함이 존재하고, 아직까지는 진짜처럼 느껴질 정도의 디스플레이 기술과 해상도와 연관된 현실적 문제(물론 더욱 끌어올릴 수 있으나 소비자 부담 비용 문제 등)가 존재하지만, 이 부분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또 발전한 여지는 충분해 보입니다.